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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새 문서: ==Definition== * 이매방(李梅芳, 1926~2015):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통무용가이며 인간문화재. *‘매방’이란 이...)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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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[[이매방|이매방(李梅芳, 1926~2015)]]: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통무용가이며 인간문화재.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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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[[장판개|장판개(張判盖,(1886 ~ 1937)]]: 일제강점기 원각사, 협률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.  
*‘매방’이란 이름은, 대련에서 소학교에 다닐때 다녔던 무용학원에서 스승이었던 중국의 경극 배우 매란방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.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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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우고 줄타기도 공부하였으나 판소리에 뜻을 두어 김채만(金采萬)의 고수(鼓手)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으며 다시 송만갑(宋萬甲)의 고수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다.
* 목포의 권번에서 예기(藝妓) [[함국향]]통해 춤과 가락을 접하고 이후 [[이대조]], [[박영구]], [[이창조]] 등 당대의 예인들로부터 승무, 검무, 살풀이춤 등 전통 무용을 사사받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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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  원각사(圓覺社) 폐사 이후에 1908년'조선 후기 예술단체인’ 협률사에 들어가 제자 배설향과 전국 공연을 했다.  
* 1987년 국가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,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로 지정됐다.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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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제자 배설향(裵雪香)을 아내로 맞이한 후 상경하여 장안사(長安社)와 연흥사(演興社)에서 공연하였다,  
* 삼현승무·보현승무, 살풀이, 검무, 산조 등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.<ref>[https://www.culture.go.kr/knowledge/encyclopediaView.do?vvm_seq=5879 이매방, 문화포털]</ref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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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1920년에 낙향하여 경주권번(慶州券番)과 전주권번(全州券番)에서 소리선생으로 제자를 가르치다가 1937년 54세에 세상을 떠났다.
* 참조: https://www.culture.go.kr/knowledge/encyclopediaView.do?vvm_seq=587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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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어전에서도 소리를 하여 고종으로부터 참봉(參奉) 교지를 받았다 한다.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잘 하였으나, 특히 「적벽가(赤壁歌)」를 잘 하였고, 그 중 ‘장판교(長板橋)싸움’의 대목은 일품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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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그의 아들 장영찬(張泳讚)이 판소리명창으로 활동했고, 생질녀인 장월중선(張月中仙)은 1993년 경북 경주에서 도문화재로 지정 받았다..<ref>[ 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aver?cid=60486&docId=1957066&categoryId=60486 장판개, 한겨레음악인대사전 ]</ref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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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참조: 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aver?cid=46661&docId=538621&categoryId=46661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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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[분류:문맥항목/2023]] [[분류:선현정]] [[분류:예술/2023]]
 
[[분류:문맥항목/2023]] [[분류:선현정]] [[분류:예술/2023]]

2024년 2월 25일 (일) 16:56 판

Definition

  • 장판개(張判盖,(1886 ~ 1937): 일제강점기 원각사, 협률사에서 활동한 판소리의 명창.
  •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우고 줄타기도 공부하였으나 판소리에 뜻을 두어 김채만(金采萬)의 고수(鼓手)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웠으며 다시 송만갑(宋萬甲)의 고수로 들어가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다.
  • 원각사(圓覺社) 폐사 이후에 1908년'조선 후기 예술단체인’ 협률사에 들어가 제자 배설향과 전국 공연을 했다.
  • 제자 배설향(裵雪香)을 아내로 맞이한 후 상경하여 장안사(長安社)와 연흥사(演興社)에서 공연하였다,
  • 1920년에 낙향하여 경주권번(慶州券番)과 전주권번(全州券番)에서 소리선생으로 제자를 가르치다가 1937년 54세에 세상을 떠났다.
  • 어전에서도 소리를 하여 고종으로부터 참봉(參奉) 교지를 받았다 한다.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잘 하였으나, 특히 「적벽가(赤壁歌)」를 잘 하였고, 그 중 ‘장판교(長板橋)싸움’의 대목은 일품이었다.
  • 그의 아들 장영찬(張泳讚)이 판소리명창으로 활동했고, 생질녀인 장월중선(張月中仙)은 1993년 경북 경주에서 도문화재로 지정 받았다..[1]
  • 참조: 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aver?cid=46661&docId=538621&categoryId=46661